
정신과 병동에서 일했던 간호사입니다.
매일 만나는 환자들 한 분 한 분이 저에게는 소중한 배움의 기회이자, 치유의 동반자입니다.
하지만 제가 다른 동료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저 역시 자살 유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자살로 잃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정신건강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깊은 상실을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특별한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환자들과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이 복합적인 감정들을 정리해보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혹시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께, 그리고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고 계신 모든 분들께 작은 위로와 이해가 되기를 바라며.
전문가의 눈, 유가족의 마음
새벽 2시, 응급실에서 올라온 자해 환자분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전문가로서의 저는 즉시 체크리스트를 작동시킵니다. 활력징후 확인, 상처 부위와 깊이 파악, 의식 상태 평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드셨나요? 평소 복용하시는 약물이 있으신가요? 가족력은 어떻게 되시나요?" 차분하고 체계적으로 질문합니다.
DSM-5 진단 기준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우울 삽화의 심각도를 평가하고, 자살 위험도를 사정합니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의 효과와 부작용을 설명하고,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 참여의 필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충분히 회복 가능한 상태입니다. 함께 치료 계획을 세워봐요."
하지만 동시에, 제 안의 유가족은 그 환자분의 손목에 난 상처를 보며 전 그날 밤을 떠올립니다.
우리 가족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이런 고통 속에 있었을까?
환자분이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 저는 전문적으로 "고립감이 우울증의 주요 증상 중 하나예요"라고 설명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 가족도 그런 마음이었구나.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간호 기록을 작성할 때도 이런 이중성이 나타납니다.
"환자는 자해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표현하며,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함"이라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면서도, 제 마음 한편으로는 '우리 가족은 미안하다는 말도 남기지 않고 갔는데...'라는 아픔이 스쳐 지나갑니다.
가족 상담 시간이면 더욱 복잡해집니다.
환자 가족에게 "자책하지 마세요. 이는 질병이에요. 함께 치료해 나가면 됩니다"라고 위로하면서도, 정작 저는 여전히 제 자신을 자책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우리 가족에게 그런 위로를 해주지 못했을까?'
약물 복용을 거부하는 환자를 만날 때 가장 힘듭니다.
전문가로서는 "약물 치료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을 교정하는 필수적인 치료법"이라고 설명하지만, 유가족으로서는 '우리 가족도 약만 제대로 먹었다면...'이라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몇 주간의 치료 후 환자분이 "간호사님, 오늘은 조금 나은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 전문가로서는 치료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만, 동시에 유가족으로서는 '우리 가족도 이런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함께, '그래도 이 분은 회복하고 있구나'라는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이렇게 매 순간 두 개의 렌즈로 세상을 보는 것은 때로는 버겁지만, 동시에 환자분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해와 원망 사이
환자들의 "죽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 저는 그것이 실제로는 "이렇게 아픈 상태로는 살고 싶지 않다"는 의미임을 압니다.
자살 사고는 질병의 증상이지,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사고라는 것을.
그런데도 가끔은 모순된 감정들이 밀려옵니다.
어떤 날은 환자분이 "가족들이 저를 이해해주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 저는 전문가로서 "가족들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서 힘들어해요.
함께 치료 과정에 참여하면서 서로를 이해해 나가면 됩니다"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 안의 유가족은 속으로 울부짖습니다.
'우리 가족은 왜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까? 왜 혼자서만 끙끙 앓았을까? 단 한 번이라도 도움을 요청했다면...'
특히 환자분이 회복되어 퇴원하는 모습을 볼 때면, 기쁨과 동시에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
'이 분은 왜 살 수 있었을까? 우리 가족과 뭐가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물론 이는 합리적이지 않은 생각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퇴근길에 혼자 있을 때면 때로는 화가 납니다.
제 가족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게도. '왜 내가 간호사인데 내 가족은 구하지 못했을까?
내가 정신건강 전문가라면서 그 신호들을 왜 놓쳤을까?'
이런 감정을 느끼는 저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전문가라면 더 객관적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환자들에게 이런 개인적 감정을 투영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하지만 동료 상담사와의 슈퍼비전을 통해 배웠습니다.
이런 감정들도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이를 인정하고 다루는 것이 더 나은 치료자가 되는 길이라는 것을.
특별한 연결감
자해나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환자들과 이야기할 때, 나는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낀다. 그들의 절망감, 고립감, 그리고 동시에 살고 싶은 마음의 일부를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기 때문이다.
"간호사님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환자에게, 나는 조용히 답합니다.
"모든 걸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얼마나 아픈지는 알 것 같아요."
전문성과 개인적 경험의 균형
때로는 내 개인적 경험이 전문적 판단을 흐릴까 봐 걱정됩니다.
너무 감정적으로 개입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냉정해지려고 노력하다가 환자와의 거리가 멀어질까 봐.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내 경험은 짐이 아니라 자산이라는 것을.
다른 간호사들이 놓칠 수 있는 미묘한 신호들을 내가 더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고, 환자들도 나에게서 진정성을 느낀다고 말해주게됩니다.
회복을 믿는 마음
가장 큰 차이는 회복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전의 나라면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라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회복하는 환자들을 본다. 자해를 멈추고, 약물 치료에 반응하며, 새로운 대처 방법을 익혀가는 모습들을.
내 가족도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지금 여기 있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 경험을 다른 이들을 돕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찾게됩니다.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지속적으로 자해와 자살을 시도하는 당신에게
오늘도 병동에서 당신을 만났습니다. 손목의 새로운 상처들, 지쳐있는 눈빛, 그리고 "또 실패했네요"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
저는 당신 앞에 앉아 또다시 똑같은 질문들을 하고, 당신은 똑같은 대답들을 반복합니다.
"왜 계속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죽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관심을 끌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이 혼란스러워하는 그 마음, 저는 압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그 고통을.
저 역시 가족을 잃은 후 오랫동안 물었습니다. "왜 우리 가족은 계속 그랬을까? 왜 여러 번 시도했을까?"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이 반복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규"라는 것을.
매번 시도할 때마다 작은 희망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는 정말 끝낼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 나를 구해줄까" 하는 양가감정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또 왔네요"라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당신을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당신이 "또" 온 것은 당신 안에 아직 살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완전히 포기했다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세 번째, 네 번째 자해를 하고 응급입원을 통해 입원실에 올 때마다 "이제 지겨우실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니라고. 전혀 지겹지 않다고. 오히려 당신이 계속해서 살아남아 제 앞에 앉아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라고.
당신의 자해는 잘못된 대처방식일 수 있지만, 그것이 당신이 살아내려는 나름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 감정이 너무 복잡할 때, 자해라도 해야 숨을 쉴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겠죠.
하지만 이제는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들을. 당신이 느끼는 그 강렬한 감정들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도구들을.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몇 번 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회복은 직선이 아닙니다. 때로는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같은 자리에서 맴돌기도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한,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번이 마지막이에요"라고 말할 때, 저는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설사 "마지막"이 되지 않더라도, 저는 여전히 여기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준비될 때까지, 진짜 마지막이 될 때까지.
자해와 자살 생각으로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당신의 고통은 진짜입니다. 치료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회복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입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당신들의 사랑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어주세요.
같은 길을 걸어가는 자살유가족들에게
이 글을 읽고 계신 자살유가족 분들께도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먼저,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저처럼 전문가로 일하면서도 여전히 상실의 아픔과 자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들,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내가 뭔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세요.
저 역시 정신건강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제 가족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오랫동안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하고 노력해도, 때로는 질병이 더 강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애도에는 정해진 시간표가 없습니다.
주변에서 "이제 그만 잊고 살아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상실의 아픔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슬픔과 그리움, 때로는 분노와 죄책감까지, 모든 감정을 느낄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떠난 가족을 기억하면서도 새로운 의미를 찾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때로는 웃고 즐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배신이 아니라 치유의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전문적 도움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저 역시 동료 상담사의 도움을 받으며 이 복잡한 감정들을 정리해 나가고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용기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저처럼 그 아픔을 다른 이들을 돕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단순히 같은 경험을 한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치유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여정에서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석양빛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인데, 요즘은 이런 작은 아름다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너무 많은 아픔을 보고, 너무 많은 절망을 함께 나누다 보니, 삶의 소중한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두 개의 시선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전문가로서의 객관성과 유가족으로서의 주관적 경험. 이 둘 사이의 긴장감이 때로는 힘들지만, 이제는 그것이 저를 더 나은 간호사로,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확신합니다.
몇 달 전, 두 번의 자살 시도 후 입원했던 20대 환자분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교수님, 저 취업했어요. 그리고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은 정말 살아있다는 게 좋다고 느껴져요." 그 편지를 읽으며 울었습니다.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또 다른 환자분은 퇴원 후 일 년이 지나 결혼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병동에서 죽고 싶다고 매일 말했던 제가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미래를 꿈꾸고 있어요."
이런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제 가족도 만약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면, 지금쯤 저에게 이런 반가운 소식을 전해줄 수 있었을까 하고요.
그 아쉬움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환자 한 분 한 분이 제 가족이 걸어보지 못한 회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제게 주어진 소중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환자로서, 때로는 간호사로서, 그리고 언제나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며 살아갑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빛이 더 밝게 보이는 것처럼, 깊은 상실과 아픔을 경험한 우리이기에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따뜻한 손길, 진심어린 대화, 함께 흘리는 눈물, 그리고 서로를 향한 이해와 사랑.
내일도 저는 이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함께 버텨주며, 회복의 가능성을 믿게 해주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든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이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치유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기적입니다. 오늘 하루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자살이나 자해 생각이 있으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위기상황 시 연락처:
- 생명의전화: 109 (24시간)
- 청소년전화: 1388 (24시간)
-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1577-0199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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